요즘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안디에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늘 그렇듯이 이안디에 들어올 여유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잘 지내고 있구나
라고 여기시면 될 듯 하다.
SNS들 서비스도 비슷하게 방치해놓고 있는데
(그래보아야 일본판 싸이월드인 mixi와 일본 지인들과 주로 나누는 facebook이다. 둘다 일본어로 쓰고 있다.)
오랜만에 SNS들에 로그인을 하고 느낀 것인데 지금의 나는 온라인 상에서는 일종의 은둔기인 듯 하다.
물론 굉장히 심플하고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만.
혹은 지금의 내 삶 자체를 이끌고 나가는게 만족스럽기도 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도 해서
나의 삶의 영역을 더 확장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SNS에서의 몇년간의 지속적인 중얼거림보다
몇년만에 한번 얼굴을 맞대는 것이 나는 좋다.
그 살과 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이 좋다.
단편적인 울림, 몇자의 글귀로 그 사람을 아는 척 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 일본에서 한 수업시간에 꽤 좋아했던 일본인 교수님이 해주신 얘기가 생각난다.
원거리 연애는 힘들다는 얘기였는데
아무리 매일 통화하고 얼굴 볼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다고 해도
냄새까지 전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냄새라는 말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오감의 하나인 그 냄새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꼈다.
체온, 온기, 살떨림, 이 모든 것을 내포하는 단어로 냄새라는 말을 했다고.
홀로그램 3차원이 발달해서 입체영상 통화가 가능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건 분명 편하겠지만
직접 만나는 즐거움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세상이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아날로그에의 회기점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적절한 조합, 디지로그로 점점 나아가게 되는 것일까.
편안한 수단은 계속 찾아가되, 아날로그의 감성과 느낌은 계속 이어나가고자 하는 그런 변화 말이다.
결국 내가 방점을 찍게 되는 것이 아날로그 쪽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디지털은, 결국 수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만나고 싶은 것은 그 속에 있는, 온기가 흐르는 사람이다.